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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검정 고무신과 우리 어머님(칼럼 이 동석, 2010년 10월 1일).

활력의 여가생활/Digital 칼럼철

by Digitalnz 2010. 10. 3.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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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검정 고무신과 우리 어머님(칼럼 이 동석, 2010년 10월 1일).

(2010년 10월 1일자 뉴질랜드 교민지 한국신문(유종옥 발행) 기고 칼럼)


우리는 1960년대 중반 국민소득 100달러 내외로 세계 최빈국 중 하나였지만 지금은 세계 12위 경제대국으로 우뚝 서 있다. 우리 어머님들은 하루 세끼를 걱정했던 시절의 사람들인데 웰빙(Well-being)을 이야기 하는 시대로 바뀌었다. 시대의 변화만큼이나 특히, 그 어려웠던 시절 전 국민의 필수품이었던 검정 고무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하루도 빠짐없이 전천후로 신었던 추억이 어린 고무신 신발이 경제가 나아지면서 사라져 가고 있으며 지금은 스님이나 특별한 날에 신는 신발로 인식되어 지고 있다. 하지만  뉴질랜드 같은 일부 섬나라 사람들은 우리가 그토록 애용했었던 고무신을 아직도 일상에서 신고 있다.


봉제 공장과 함께 어려웠던 시절에 우리나라 산업의 한축을 이루었던 고무신 공장. 부산의 국제상사나 진양고무 등은 아마 지천명(知天命)을 넘긴 우리 세대에 있어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특히, 진양고무에서 생산되었던 타이야표 검정 고무신은 우리들이 즐겨 찾는 메이커였으며 또한 똑같은 검정 고무신을 신었더라도 한번쯤은 타이야표를 신었다면 친구들에게 어깨를 우쭐대기도 하였다. 그리고 시골에서 자란 우리들은 삼촌이나 고모가 부산 고무신 공장에 취직을 했다면 한 집안의 경사였으며 실제로 요즈음 공기업만큼이나 취직해서 들어가기가 어려웠고 대단했었다.

 

 선택의 여지가 없어서 신어야 했던 검정 고무신. 보통 우리들에겐 1년에 하나 또는 두 켤레 정도로 만족해야 했으며 그것도 어쩌다가 명절 때쯤 되어야 새 신발을 어머님이 사오면 너무나도 좋아서 그리고 누가 훔쳐 갈까봐 껴안고 잘 정도로 아꼈던 기억이 새삼스럽다. 이러한 고무신은 또한 그 시절 우리들에 있어서는 친구들과 흙탕물에서 물장난할 때 쓰이는 유용한 놀이 도구이기도 하였다. 특히, 여름날엔 학교 마치고 오던 길에 목마르면 입을 담그고 마시곤 했던 시냇물에서 송사리나 피라미 같은 고기들을 잡아서 고무신에 담아 들고 맨발로 8월의 태양열로 달구어진 신작로 길을 걸어 집으로 올 적에는 발바닥이 왜 그리 뜨거웠던지 가물가물한 그 추억도 있다.


이처럼 한, 두어 켤레로 1년을 보내다 보면 금세 밑바닥부터 닳아서 반들반들 해가지고 엷어지기도 하지만 간혹 고래 심줄만큼 질긴 새신발의 검정 고무신도 나무나 끝이 뾰족한 곳에 걸려서 찢어지기라도 하면 어머님에게 그리 혼나기도 많이 하였다. 혼내기만 했던 어머님도 경제적인 문제도 그렇지만 지금처럼 당장 그렇다고 새로운 고무신을 살 수도 없었으니 바늘로 손수 꿰 메어서 다시 신도록 해주었는데 하지만 하필이면 어머님은 검정 고무신인데 하얀 실로만 꿰 메 주곤 하였다. 지금 생각하면 염색한 검은 실은 비싸서 구하기가 어려워 하얀 실로 꿰 메지 안했나 이해가 간다. 역시 사람은 나이가 먹어야 부모님이 하셨던 일을 이해할 수 있다는 평범한 진리 어머님 말씀이 다시 생각이 난다. 

 

 얼마 전 한국의 모 TV에서  다큐멘타리로서 드물게 “아마존의 눈물 조예족” 편이 아주 인기를 끈 적이 있다. 물론 삶의 환경이 지극히 어려운 아마존의 밀림 자연에서 맨발에 나체로 살고 있는 부족이 오늘날과 같이 문명이 아주 발달된 세상에 공존하고 있다는 자체로서 볼거리를 제공해서 많은 시청자들로부터 호응을 받아 섰겠지만 또 한편으로는 우리는 경제적인 개념 없이 살고 있는 또 하나의 민족이 지구상에 어딘가에 지금도 존재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도 추억의 검정 고무신을 통해서 다시 한 번 짚어 볼 수 있는 계기도 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문명의 척도를 발전된 사회나 경제 기준으로 본다면 우리 현재가 분명히 앞서 있는 것은 맞지만 행복을 기준으로 본다면 가장 원시인 부족인 그들이나 우리에게 그리워지는 검정 고무신의 어려웠던 그 시절이 가장 문명화된 사회일 거라는 회상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이처럼 맨발에 나체족은 아니지만 지구상에 또 다른 문명국가 뉴질랜드를 비롯한 일부 섬나라에서는 아직까지도 길거리를 맨발로 다닌다거나 고무신을 신고 다니는 사람들을 종종 볼 수가 있다는 것이다. 섬나라 특성상 흙탕물 같은 모래들이 많아서 묻었을 때 씻기 등이 편한 유용성 때문인지 아니면 건강 때문인지는 잘 모른지만 아무튼 고무신을 즐겨 신고 다니는 사람들이 많고 이들 나라 어느 신발가게에 가든 분명히 진열되는 주력 상품 중에 하나가 고무신임에는 틀림없는 것 같다. 물론, 자세히 보면 색깔이 다양하고 구멍이 옹기종기 나있는 있는 고무신발도 있는 걸로 봐서 기능성이 조금 돋보이는 수준이지 우리가 그 시절 신었던 고무신은 고무신이다. 고무신의 화려한 부활의 영광이 이런 나라에서 이루어지기를 바랄뿐이다.  

(뉴질랜드 대형 매장에 전시되어 있는 고무신).

 

신발의 기능은 여러 가지 위험물로서 발바닥을 보호하는데 있다. 유구한 인류의 우리 역사만큼이나 신발도 우리에겐 짚신, 나막신, 게다, 고무신, 운동화, 장화, 구두 등으로 변신에 변신을 산업의 발달과 함께 해왔다. 따라서 60, 70년대 화려했던 검정 고무신 신화가 산업의 발달과 더불어 변형된 형태로 우리 조국 한국에서 또는 세계 어느 국가에서든 재현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우리의 모든 사람들도 국경 없는 오늘날과 같은 Global 시대에서 검정 고무신 같이 역사의 무대에 사라져 가는 추억의 존재로 남아서 같이 갈 것이 아니라 세계 속에 당당하게 빛나는 주연의 한 사람으로서 또한 불쏘시게 같이 필요한 존재로서 어디에서든 이루고자 하는 일 소원 성취하기를 기원해 본다.  

필자 : ldsci@hanmail.net(오클랜드 남부 파파쿠라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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