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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월 25일 [영국령 지브롤터(Gibraltar)] 우리의 쿠르즈선 4월 17일(7일차) 도착지 알아보기.

마음의 평화속으로/Digital 해외 여행

by Digitalnz 2025. 1. 25. 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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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월 25일 우리의 쿠르즈선 4월 17일(7일차) 도착지 영국령 지브롤터(Gibraltar) 알아보기.
세월은 유수같이 잘도 흘러 가는 것 갔다. 7개월 전 예약한 쿠르즈선 일정이 코앞에 다가오기 시작...


인구 : 33,691명(2020년 추계, 해안선 소국 모나코(3만 6천) 인구와 비슷), 면적 : 6.8Km2, 유럽, 영국령.


(요약)
지브롤터라는 이름은 아랍어 ‘자발타리크’에서 유래했다. 지브롤터 해협은 대서양에서 지중해로 들어가는 유일한 통로이다.

반도는 석회암과 이판암의 능선으로 되어 있다. 지브롤터는 1869년 수에즈 운하가 개통됨에 따라 전략적 중요성이 커졌다.


영국의 식민지로서 방위를 제외한 모든 문제를 자치적으로 해결한다. 토지가 부족하여 농업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으며, 담배·음료수·통조림 등의 경공업이 행해지고 선박·군인의 수송, 관광업, 재수출 무역 등이 주 수입원이다.

호텔과 해변의 편의시설을 대규모로 확장하면서 관광업이 발달했다. 지브롤터인들만이 영주할 권리가 있으며, 다른 사람들은 체류허가를 받아야만 한다. 대부분의 지브롤터인들은 영어와 스페인어를 모두 사용하지만 스페인어가 모국어이다.

길이 5㎞, 너비 1.3㎞이며, 모래가 많은 저지대인 길이 1.6㎞의 지협을 통해 스페인과 연결되어 있다. 지명은 아랍어 자발타리크('타리크 산')에서 유래하는데, 타리크란 711년 이 반도를 점령한 티라크 이븐 지야드를 지칭하는 것이다.

지브롤터 해협은 대서양에서 지중해로 들어가는 유일한 통로인데, 지브롤터는 이 해협을 지키는 영국 해군·공군의 견고한 기지이다.


반도는 더록(the Rock)으로 알려진 석회암과 이판암의 능선으로 되어 있다. 이 능선은 지협으로부터 급격히 솟아 가장 북쪽의 정상인 록건(Rock Gun)은 해발 421m에 이른다. 최정상은 426m이며 남단 가까이에 있다.

더록은 바다 쪽으로 가면서 차차 낮아져 유로파 곶에 이르며, 이 갑은 해협 건너 남쪽으로 32㎞ 떨어진 세우타(모로코에 있는 스페인의 고립 영토)와 마주보고 있다.

지중해에서 보면, 지브롤터는 반도의 동해안에서 바다와 마주보고 있는 일련의 깎아지른 절벽들로 보인다. 서쪽에서 보다 완만하며 옛 방벽 위로 해발 90m가량까지 층층으로 지어진 집들이 자리잡고 있다.

조금 더 올라가면 석회암 절벽들에 의해 거의 고립된 어퍼록(Upper Rock)이 서로 뒤엉킨 야생나무들로 덮여 있다.

지브롤터에는 샘이나 하천이 전혀 없어 카탈란 만과 샌디 만 위쪽의 0.14㎢에 달하는 모래 비탈을 닦아 강우집수구역으로 이용하고 있다. 물은 더록을 뚫어서 만든 많은 물 탱크에 저장된다.

저장된 빗물은 지협에 있는 샘들에서 퍼올리거나 바닷물을 증류시킨 물과 혼합된다. 바닷물은 위생용으로 공급된다.

지브롤터의 여름은 무덥고 습도가 높지만, 비는 거의 오지 않는다. 겨울에는 온화하고 충분한 양의 비가 내리며, 봄·가을에는 따뜻하고 적당한 양의 비가 내린다.

지브롤터에는 500종이 넘는 작은 화초들이 있으며 그중에 지브롤터 서양말냉이는 더록에서만 볼 수 있는 꽃이다. 어퍼록에서는 야생 올리브와 소나무가 자란다.


포유동물로는 토끼, 여우, 바바리 원숭이가 있다. 유럽에서 볼 수 있는 유일한 야생 원숭이인 이 바바리원숭이들은 수백 년 동안 더록을 배회했으며, 오래 전부터 영국이 지브롤터를 점령해왔음을 알리는 상징이었다.

이 원숭이들은 마음대로 돌아다니기는 하지만 대개 어퍼록에서 볼 수 있다. 철새들은 흔히 눈에 띄며, 그중에는 유럽에서 유일한 바바리자고새도 포함된다.

지브롤터는 헤라클레스의 두 기둥 가운데 하나였을 것으로 간주되는데, 다른 하나는 맞은편 아프리카 해안에 있는 하초 산이다. 고대 지중해 세계에서 이 기둥들은 항해의 서쪽 한계를 나타냈다.

18세기 이래 지브롤터는 영국 해군력의 상징이었으며, 그런 맥락에서 흔히 '바위산'으로 알려졌다. 1869년 수에즈 운하가 개통됨에 따라 전략적 중요성이 커졌으며, 식량 공급항으로서 더욱 중요하게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영국군 주둔지와 해군 조선소는 계속 이곳 경제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해상훈련작전 때 종종 이곳의 항구시설들이 이용된다.

지브롤터는 영국의 한 식민지로, 방위만 제외하고는 모든 문제를 자치적으로 해결한다. 시의 행정은 시 의회를 대신하여 장관이 관할한다.

1981년 지브롤터인들에게 완전한 영국 시민권이 주어졌으며, 또한 18세가 넘은 남녀 지브롤터인들과 영국 민간인으로 6개월 이상 거주한 자들에게는 선거권이 부여되었다.

영국 국왕이 임명한 총독은 행정부의 수반이며 지브롤터 위원회의 자문을 받는다. 총독은 총리와 최고 8명의 장관으로 각료회의를 구성하는데, 각료들은 의회에서 다수 의석을 차지하는 당이나 연합정당에서 선발한다.

의회는 총독이 임명하는 의장, 4년제 임기의 직선의원 15명, 임명직 의원 2명으로 구성된다.

토지가 부족하여 농업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으며, 담배·음료수·통조림 등의 경공업이 행해지고 선박·군인의 수송, 관광업, 재수출 무역 등이 주수입원이다.


호텔과 해변의 편의시설을 대규모로 확장하면서 관광업이 발달했다. 항구시설이 서해안의 대부분과 바다를 매립한 땅의 일부를 점하고 있다.

소득세와 관세가 식민지 세입의 대부분이다. 영국 정부가 상당량의 개발 원조를 해주고 있다. 공공경비의 많은 몫이 사회사업·공공사업·시행정사업에 들어간다.

1973년 영국과 함께 유럽 경제공동체(EEC)에 가입했다. 여객선과 화물선들은 지브롤터 항구에 머물고 카페리가 매일 모로코의 탕헤르를 내왕한다.

지브롤터와 런던 및 탕헤르를 잇는 정기항로가 개설되어 있다. 차량교통용으로 더록 밑에 도로와 터널들이 나 있다. 케이블카는 능선 중앙의 꼭대기까지 올라간다.

인구의 2/3가 지브롤터인인데, 이들은 1925년 이전에 이곳에서 태어난 사람들과 그 후손들이다. 약 1/5 정도가 거류 외국인들이며, 나머지는 영국군 가족들이다.

지브롤터인들만이 이 식민지에서 영주할 권리가 있으며, 다른 사람들은 체류허가를 받아야만 한다.

지브롤터인의 대부분은 제노바·영국·스페인·몰타·포르투갈인의 피가 섞여 있다. 거류외국인촌에는 인도 소매상인들과 그들의 가족들, 그리고 모로코에서 온 노동자들이 있다.

인구의 대다수가 로마 가톨릭교를 믿고 있다. 이곳의 영국성공회 관구는 남유럽의 여러 공동체를 함께 관할한다.

소규모의 유대 공동체에는 스페인계 유대인들이 모여 산다. 대부분의 지브롤터인들은 영어와 스페인어를 모두 사용하지만 스페인어가 모국어이다.

교육은 5~15세에는 무상·의무제로 실시되고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여러 개의 공립국민학교와 2개의 종합중학교가 있다. 사립학교, 사관학교, 지체부자유 아동들을 위한 특수학교, 전문대학도 있다.

더록에 있는 석회암 동굴들을 발굴한 결과 선사시대부터 이곳에 사람이 거주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슬람교 지도자 타리크 이븐 지야드가 711년 이곳을 정복했으며, 그후로 모든 점령자들이 이곳을 요새로 삼았다.

이슬람교도의 점령은 1462년 스페인에 의해 막을 내리게 되었으며, 1501년에 이사벨 1세가 스페인령으로 병합했다.

그러나 1704년 스페인 왕위계승 전쟁중에 조지 루크 경이 지브롤터를 점령했으며, 스페인은 1713년 위트레흐트 조약에 의해 이곳을 정식으로 영국에 양도했다.

그러나 스페인은 이곳을 재탈환하려고 여러 번 시도했으며, 특히 1779~83년에는 장기간에 걸쳐 포위 공격했지만 결국 성공하지 못했다.

지브롤터는 1830년에 영국의 직할식민지가 되었다. 수에즈 운하의 개통은 지브롤터의 소유권을 유지하려는 영국의 결의를 더욱 확고히 했는데, 이는 운하의 개통으로 지중해가 동부와 아프리카 남부 아시아에 있는 영국 식민지들로 가는 중요한 통로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20세기초 더록에 터널을 뚫어 이 반도의 동서간 교통이 원활해졌으며, 파낸 흙과 돌은 0.26㎢나 되는 바다를 매립하는 데 사용되어 비좁은 거주지역을 확장시켰다. 제1·2차 세계대전중에 지브롤터는 연합군 호위함의 수리·조립항으로 널리 이용되었다.

1960년에는 스페인 정부가 지브롤터의 '비식민지화'를 강력하게 주장했다. 1967년 영국이 지브롤터에서 주민투표를 실시하여 식민지 주민들에게 스페인의 통치를 선택할 것인지 아니면 계속 영국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할 것인지를 물었다. 투표 결과 압도적인 표차(1만 2,138 대 44)로 영국을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1969년 영국이 지브롤터를 위해 작성한 새로운 헌법은 지브롤터인들에게 완전한 대내 자치권을 부여함과 동시에 영국과 지브롤터의 유대관계를 명백하게 재확인했다.

이에 스페인은 지브롤터에서 무역을 하던 스페인 거류민들과 출퇴근하는 노동자들을 철수시키면서 지브롤터와의 경계지역을 폐쇄했다. 스페인은 1985년에 국경 봉쇄를 해제했다(자료 참조 : 위키토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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