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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追憶)을 그리게 하는 새벽녘 기차소리(칼럼 이 동석)

활력의 여가생활/Digital 칼럼철

by Digitalnz 2011. 7. 22.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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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追憶)을 그리게 하는 새벽녘 기차소리(칼럼 이 동석)


멀리서 들려오는 기차소리나 기적소리를 듣게 되면 아련히 피어나는 우리의 소중한 옛 추억들. 60,70년대 청맥통(청바지, 맥주, 통기타)과 함께 기찻길 옆 동동주와 파전이 생각나고, 녹슨 철길을 한 번쯤 걸어보고 싶은 유혹과 낭만을 간직하고 싶은 마음 그리고 기찻길 옆 코스모스 우거진 철길의 우리의 포근한 고향집 같은 고향역이 떠오른다.


꿈 많은 학창 시절 추억과 낭만을 곤히 간직하기도 했던 기차소리. 우리 집 수마일 밖 저 멀리서 이른 새벽녘 레일 위를 달리는 기차소리가 오늘도 변함없이 우리의 예전 동구 밭 너머 타고 잔잔히 들려오는 그 소리 같이 들려온다. 대부분 오클랜드와 웰링턴을 이른 새벽 매일 많은 물동량을 가득 싣고 주로 오르내리는 기차들이다. 그리고 여명(黎明)이 밝아오는 침실 유리창 너머 뒤뜰 정원의 레몬나무 가지 위 참새 떼들도 지나가는 기차소리에 선잠을 깨웠는지 덩달아서 지져기며 상쾌한 아침을 열어주니 더할 나위 없이 홀가분한 하루가 시작된다.

 

이 곳 뉴질랜드에서 우리는 두어 번 집을 옮겨 보았지만 우연찮게 기차 철길을 중심으로 같은 타운에서 3,4킬로 변방을 중심으로 동서로 왔다 갔다 하면서 기차와 인연을 끊지 못하고 여태껏 살고 있다. 그러니 세계 어디에 살든 내 인생은 기차와 같이 가는 인생인가 보다 생각도 든다. 특히, 젊은 신혼시절 직장 따라 이사를 많이 하여 이골이 나서 그런지는 몰라도 한 동안 앞으로도 집을 멀리 옮길 계획도 없으니 지난 10여 년 동안 잔잔히 매일 들려주던 새벽녘에 들려오는 기차소리는 멈추지 않고 달리는 기차만큼이나 앞으로도 계속해서 들어야 할 것  같다. 그래서 나에게는 행운 아닌 행운의 인생을 덤으로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지금 기차는 시티에 갈 일이 있거나 하면 비록 승용차로 20여분의 짧은 거리이지만 오가는데 시간이 더 걸려도 애용해보는 나의 중요한 교통 보조수단의 하나이다. 기차를 타다보면  예전의 기차 안에서 먹었던 삶은 계란과 사이다의 맛만큼이나 추억어린 말동무들을 동행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인간미를 물씬 풍기는 우리의 70,80년대를 회상(回想)해 주는 차장(次長)은 있으니 기차와 함께 할 때마다 잠깐이나마 옛 추억의 낭만과 그리움이 피어오르기에 정감(情感)이 간다. 그리고 뉴질랜드 국제공항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마오리어(語) “아오테아로아(Aotearoa)" 즉, “하늘에는 아름답고, 더 없이 푸르고 긴 하얀 구름이 있는 땅” 뉴질랜드의 드넓은 자연을 기차로 오고가는 도중에 차창 너머로 넌지시 여유롭게 만끽(滿喫)할 수 있어서 또한 이용해 보기도 한다.


오클랜드 서쪽 와이타케레(Waikakere)에 가면, 1900년대 초에 와이타케레 저수지 댐을 개발하면서 건설자재 운반 및 보수용으로 사용되었던 협궤 선로(線路)를 댐 완공 후 몬타나(Montana) 케스케이드(Cascade) 산 정상에 위치한 자신들이 만든 댐까지 하루 서너 차례 왕복 운행하는 관광용으로 전환한 아이디어 작품, 협궤기차가 있다. 지금 철로의 2/3크기보다도 좁은 철로에 디젤 엔진에 20여명을 한꺼번에 실어 나를 수 있는 그림 같은 이 꼬마 여행협궤기차가 더욱 우리의 관심을 끈다.

 

그 이유가 있는 것은, 일단 이 협궤기차를 타게 되면 어찌나 올망졸망하게 만들어진 소형 기차인지라 금방 동화속의 동심(童心)의 세계로 들어가도록 만들어져 있기 때문이다. 또한 기차에 세로로 놓인 의자에 앉으면 사방이 탁 트여져 있어서 장난감 속에 들어와서 타고 있는 기분이 들고, 그 속에서 대략 1킬로미터의 긴 터널과 나무로 된 좁은 교량을 기차로 왕복하면서 보이는 웅장한 인공 저수지 폭포 그리고 산세와 어우러진 그림 같은 마누카우(Manukau) 하버(harbour) 뷰(View)가 어느 지역에서 보다도 멋있게 잡아 보도록 우리의 시선을 꽉 붙잡기 때문이기도 한다.


혹시라도 시간이 있어서 첫 번째 기차를 타고 가서 중간 역에 내려서 넓은 공터에서 피크닉을 즐긴 후 오후에 돌아 내려오는 마지막 기차를 다시타고 내려오기라도 한다면 석양녘에 능선 따라 비추는 햇빛이 기찻길 옆 저지대에 아름답게 우거진 다소 이국적인 자연의 숲에 빠져들게 만들면서 찾은 이의 마음을 배가(倍加)로 들뜨게 한다. 그리고 도착해서 은은한 찻집에서 차 한 잔이라도 나누는 여유를 가져 본다면 더할 나위 없는 추억의 영화 속 한 장면의 주인공 같은 소중한 한 페이지를 만들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뉴질랜드 북섬의 서부선과 남부선의 디젤 기차소리도 이젠 몇 년 안에 전철화가 예정되어 있어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날도 얼마 남지 않은 것 같다. 그렇지만 뉴질랜드는 산천(山川)의 자연이 아름다운을 자랑하는 국가이니 만큼 우리가 살고 있는 한 새로이 건설되는 전철은 고국의 옛 기찻길 옆처럼 봄이면 진달래꽃 만발하고 가을이면 코스모스 활짝 피어있는 정든 고향 역 같은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정서로 만들어졌으면 하는 바램 이다. 그리고 또한 변함없이 오늘도 새벽녘을 달리는 기차소리는 우리 모든 사람들에게 지겹게 잠을 깨우는 시끄러운 소리가 아니라 아름답고 정겨운 추억을 매일 가져다주는 그런 존재로 영원히 간직되기를 기원해 본다.


필자 : ldsci@hanmail.net(오클랜드 남부 파파쿠라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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