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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그때 그 시절(정겨운 우리의 소시절, 사진 출처 : 불명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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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그때 그 시절(정겨운 우리의 소시절).

 

 

 

 

 

그 전에는 벼를 논에서 벤 후, 논바닥에서 말린 후에

지게로 벼를 집으로 날라다가 집에서 탈곡을 하였으며

탈곡한 후에는 벼 집단 치우는 것도 일이라

소시적에 한번 쯤 해봤으리라.

 

보리타작이나 콩타작은 보시는 것 같이

도리깨로 하였습니다.
 

 

콩타작을 하였나 봅니다. 나중에 할 잔일들이 많이 있지요.

바람을 일으키는 풍로가 있기도 하였는데...




 

전형적인 우리네 초가마을이며

 마을 주변에는 버드나무들이 많이 있네요.


 

여유가 조금은 있는 듯한  단란한 우리네 가족의 모습.

 

손으로 하루종일 모내기 하고 나면 허리는 물론 눈이

퉁퉁 붇고 하지요. 그래서 힘들고 꽤가 나면

뒤에서 어린 모를 정리해 주거나 나르는 일을 했습니다.

사진은 모내기하는 사람이

다행이도 조금 되네요.

 

예전에는 천수답이 많았습니다.매년 4,5월쯤이면

초벌 논매기 하였고, 손톱이 없으면 힘이 많이 들었죠.

 

동네 아이들 모습 보니 그래도 머리들은 깔끔하게

잘랐네요. 저 개울에서 미꾸라지도 잡고 메뚜기도

잡기도 했는데...

 

먼나먼 시장길(신장로), 보통 산중시골이라

기본으로 오리나 십리길(4KM)을 걸어서 어머님들은

시장을 다녀왔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맛있는 것 사가지고

시장 갔다가 언제 오시려라 손 꼽아 기다려 보기도 하고..

 

당시에는 시꺼먼 비누도 많이 있었습니다.

 

풀베기 운동(퇴비용)ㅡ4H 구락부라는 깃발도 보이네요.

 

 

요즘 신세대분들은 예전에 마을 입구에 가면 쉽게 볼 수 있었던

이 퇴비더미 사진을 보면 어떤 의미로 다가올지 궁금하지만...

특히 농촌에 사셨던 분들은 마을 입구에 커다란 풀더미를 쌓아 놓고

마을 또는 읍.면 단위로 목표량을 정해 놓고 담당공무원의 독려속에

경쟁을 벌이며 퇴비증산에 사활을 걸었던 시절을 기억들 하시겠죠.

 

 

당시에는 부역이라 하여 마을별로 많이들 동원되었습니다.

그리고 더운 여름에는 보통 이른 아침에 동원이 되곤 했지요.

마을 진입로 및 농로길은 보통 농민들의 부역으로

길을 만들곤 하였습니다.

 

 

한 짐씩 이네요. 여름 내내 다들 하였던 것 같아요.

우리 아버지, 삼촌들은 어른들이라 한 짐씩 져도 문제가

없었는데 우리는 어떻게 하다 보면 지게다리가 길어서

넘어지기도 하였던 기억이..

 

 

 

 

새마을 모자를 보니 생각이 납니다. 예전에 성남에 있는

새마을 연수원 교육(누구 형님이 원장님이셨지요)에 삼촌들은

갔다 오면 녹색 새마을 모자에 파란색 츄리닝 한 벌씩 받아

가지고 와서 자랑들 하고 했는데.

 

남녀노소 불문하고 산과 들에서 풀을 베어 지게에 지고

새마을기를 마을이장이나 작업반장의 뒤를 따라

긴 행렬을 이루며 집합장소로 이동하던 그때...

 

높은 분들이 지나가면 잘 보이도록 도로

옆 가장자리에 산더미처럼 최대한 높게 쌓아

실적에 따라 마을별로 시상도 있였던 기억이 납니다.

 

 

 

 

 이렇게 모아 퇴비를 만들었지요.

 

 

마을마다 퇴비증산 운동이 활발히 벌어 졌었습니다.

 

 

초가집 이을때 이엉과 용마루를 엮고 있네요.

초가지붕 이을 때면 굼벵이들이 정말 많았습니다.

그땐 징그러워 먹지도 못햇는데..요즘에는 고단백으로 당뇨에

좋다고 해서 구하기가 무척 힙들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엉 만드는 걸 보니 초대장 시절 월동 준비하던 생각도 납니다.

 

내년에 심을 씨앗들을 처마에 많이들 매달아 보관하였습니다.

 

도리깨로 콩타작을 하는가 봅니다.

  

농촌 일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해도 해도 끝이 없지요.

우리 어머님들은 허리 부서지게 일을 해서 애들만은

고생 안 시킨다고 학교들 보냈습니다.

 

 노란 옥수수가 먹음직스럽습니다.

 

감나무 사이로 벼 탈곡하는 모습이 무척이나 정겹습니다.

탈곡기는 처음에는 창살같이 생긴 것에 흝어 내리는 수동이었는데

나중에는 발로 누르면서 탈곡을 하는 기계로 바뀌었지요.

정말 기계 소리가 무섭기도 하였지요.

 

등목이라 하여 예전에 많이들 하였습니다.

지하수 물이 어찌나 차가워서...

 

집집마다 장독대가 저렇게 대부분 있었습니다.

 

예전의 우리네 부억 모습

 

할머님하고 어머님(고부지간) 둘이 사이 좋게

앉아서 맷돌에 메밀을 갈고 있나 봅니다.

 

 다정다감하게 외양갓 앞 양지바른 곳에서 짚신을

만들고 있는 부부의 모습이 예전 우리 부모님들 모습

그대로 입니다.

 

소는 재산목록 1호에 소가 없으면 농사를 할 수가

없었으며 특히, 아버님이 쟁기질하는 모습은 보기보담

힘들어 하셨던 기억이 납니다.


 

가을걷이에 새참을 나르고 있나 봅니다.(막걸리에 국수..)

배가 고프면 허리가 더 아팠어요~어찌나 기둘리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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