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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80년대 장발단속 그 때 그 시절을 아시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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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80년대 장발 속 그 때 그 시절을 아시는지.

 

1979년 내가 대학교 1학년 시절, 남산에 오른 후 동국대 후문 장충단 공원쪽으로 내려오고 있는 데 장발 단속에 걸려서 장춘 파출소에 끌려가서 쪽 팔리게 서약서 쓰고 나왔던 그 때 그 시절 나의 이야기.

 

 

1970,80년대는 긴급조치나 계엄령 외에도 장발단속‧불심검문 등 으스스한 단어들이 춤을 추던 시절이었다.  

 

유신이라는 칼을 들이대며 국민들의 입을 틀어막던 시대. 반공이나 경제개발‧ 민족중흥 등의 거대명제(?)에 밀려 인권 따위는 장롱 속에 숨어 있어야 했다. 

 

대학생들은 학교에서 나오는 길에 골목길로 스며들기 일쑤였다. 길목 곳곳에 경찰이 포진하고 있었다. 저 멀리 경찰관이 보이면 후닥닥 뛰거나 슬그머니 다른 길로 빠져야 했다. 경찰관들은 가위를 들고 굶주린 하이에나처럼 지나가는 젊은이들을 훑었다. 

 

그러다가 머리가 조금 덥수룩해 보인다 싶으면 불러 세웠다. 길목을 지키다 지나가는 차들을 세우는 요즘의 음주단속 풍경과 다르지 않았다. 

 

어이! 하고 지목당하는 순간 영화 <고래사냥>처럼 냅다 뛰는 젊은이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주춤주춤 경찰관 앞으로 가기 마련이었다. 그 당시 경찰관에 대한 공포는 지금과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강도가 셌다. 

 

뒷머리가 옷깃에 닿거나 옆머리가 귀에 닿으면 단속 대상이었다. 그걸 피하려고 머리를 파마로 말아 올리는 웃지 못 할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이 기준도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였다. 고개를 뒤로 조금 젖히면 짧은 머리도 옷깃에 닿는 판이니 처분은 들쭉날쭉 하기 마련이었다.

 

 

1970년대 우리나라 경찰관들 장비라면 권총, 경찰봉, 수갑 외에 한 가지를 더 꼽을 만하다. 수동식 바리캉, 즉 이발기였다. '국민 기강을 문란하게 하는 퇴폐적 장발(長髮) 사범'을 발견하면 경찰은 바로 붙잡아 바리캉을 들이댔다. 

 

이 기계로 뒷머리 혹은 옆머리 일부를 싹둑 '벌초'하는 걸 감수한 사람은 훈방됐다. 거부하면 즉심에 회부됐다. 장발의 기준은 '옆머리가 귀를, 귀밑머리가 옷깃을 덮는 머리'였다. 경찰의 바리캉이 가장 바쁘게 움직였던 건 1976년이었다. 이해 5월까지 55만9837명이 단속에 걸려 2만4998명이 즉심에 회부됐다(조선일보 1976년 5월 15일자).

바리캉은 1920년대에 이 땅에 활발하게 보급되기 시작했다. '이발계의 대혁명'이라고 광고된 첨단 발명품이었다. 영어로는 '헤어 클리퍼(hair clipper)'인데 프랑스의 '바리캉 에 마르(Bariquand et Marre)'사 제품이 일본을 거쳐 국내에 들어오면서 특정 브랜드가 그대로 일반명사가 돼 버렸다. 

 

해방 후 권위주의 정권 시절을 거치면서 이 물건에는 두렵고 아픈 기억들이 묻었다. 학생들 두발이 약간만 길어도 정수리 한가운데에 '고속도로'를 개통시킨 학생 주임의 바리캉은 공포의 대상이었다. 

 

특히, 입대 전 빡빡머리 깎을 때 철제 바리캉의 감촉은 가슴 허전한 청년들 두피를 차갑게 짓눌렀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는 푸시킨의 시가 걸린 구식 이발소에서 머리를 밀어 본 7080세대들은 바리캉 날에 머리카락이 쥐어뜯기던 때의 끔찍한 고통을 잊기 어렵다.

 

 

어떤 사람들은 바리캉을 직접 장만해 집에서 이발했다. 소설가 장정일이나 연극연출가 오태석은 헤어 스타일에 신경 쓰기 싫다며 직접 바리캉으로 머리를 삭발했다. 이발비를 아끼려는 서민들에게 가정용 바리캉은 절약의 아이콘이 됐다. 

 

극심한 가뭄으로 민족이 고통받던 1920년대, 온 국민이 허리띠 졸라매던 1960~70년대, 그리고 IMF 쇼크가 덮친 1997년 말~1998년에 바리캉 판매가 급증한 건 우연이 아니다.

가정용 바리캉이 최근 들어 또 잘 팔린다고 한다. 지난 6월 한 달간 어느 온라인 쇼핑 사이트의 전동식 바리캉 판매량은 작년보다 54%나 늘었다. 이번엔 절약 차원이 아니다. 아랫머리를 밀고 윗머리는 길게 남겨두는 '투 블록 컷'이라는 최신 헤어 스타일을 유지하기 위해, 아랫머리를 지속적으로 직접 짧게 다듬으려는 '셀컷남(self-cut男)'들 필수품이 바리캉이라고 한다. 

 

돈이 궁한 셀컷남의 시대는 가고, 멋을 좇는 셀컷남의 시대가 열리고 있다(자료 출처 및 참조 : 조선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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