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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2월 5일 현지인 대상 첫 합주공연.

아코 인생 천리길/아코디언 Digital

by Digitalnz 2012. 2. 5. 0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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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2월 5일 현지인 대상 첫 합주공연.

현지인 대상 낯선무대에서 합주공연을 생애 처음 가져보았는 데 역시 남 앞에 선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실감하는 계기였다.

우리가족과 다른 한 가족 두 가족으로 준비한 노래는 우리의 전통노래 아리랑과 불교신자인 우리네 가족이 함께 죄짐맡은 우리 구주(What a Friend We Have in Jesus)을 연주해 보았는 데, 아리랑은 그런데로 연주를 할 수 있었지만 낯설고 익숙치 않는 찬송가풍에 4분의 4박자인 죄짐맡은 우리구주 연주에 내가 그만 박자를 놓쳐서 미안하기 짝이 없었다. 그래도 취미로 하는 연주인 만큼 첫 무대치고 좋은 경험을 가졌었던 것 같다.

 

 

역시 무대는 나보다 한 수 위인 아내.

여유가 돋보이기도.

 

열심히들 준비하는 가족들.

 

나는 당황도 조금 되었는 데

역시 리더는 하는 직업이 남 앞에 서는 것이라 여유가..

 

유머 재치도 풍부한 악단 리더.

 

아내하고는 이렇게 악기를 들고

같이 선 무대가 생애 처음이라서 조금은 어설프기도.

 

아리랑 연주에 박수를 유도해서

분위기를 힘껏 고조시킨 리더.

 

아내는 악기 하나를 더 다루기로 되어 있는 데

아마 열심히 연습할 걸로 기대. 

 

만년 재주꾼 목사 가족

섹스폰, 플르트 연주.

 

음대에서 작곡을 전공한 리더 목사.

그는 오케스트라를 지휘해 본 경험도 있을 뿐만 아니라 현존하는 모든 악기도 거의 다를 줄 아는 만년 재주꾼.

 

죄짐 맡은 우리 구주 죠셉 스크리븐(Josph Scriven 1819-1886)

찬송 369장. 종교를 떠나 우리말로 번역된 찬송 가사내용이 가슴에 와 닿네요 그리고 작곡을 한 성자 죠셉 스크리븐에 얼킨 사연소개(밑).

 

1. 죄짐 맡은 우리 구주 어찌 좋은 친군지. 걱정 근심 무거운 짐 우리주께 맡기세.

     주께 고함없는 고로 복을 받지 못하네. 사람들이 어찌하여 아뢸 줄을 모를까.

 

2. 시험 걱정 모든 괴롬 없는 사람 누군가. 부질없이 낙심말고 기도드려 아뢰세.

     이런 진실하신 친구 찾아 볼 수 있을까. 우리 약함 아시오니 어찌 아니 아뢸까.

 

3. 근심 걱정 무거운 짐 아니진 자 누군가. 피난처는 우리 예수 주께 기도드리세.

     세상친구 멸시하고 너를 조롱하여도. 예수 품에 안기어서 참된 위로 받겠네.


영국의 성자 스크리븐은 1819년 9월10일 아일렌드에서 태어나더블린의 트리니트 대학을 졸업하였다. 플리머스 형제단의 독실한 믿음의 가정으로 장래가 촉망되는 청년이었다. 1840년 아일렌드 처녀와 결혼을 약속하였다. 그러나 결혼식 전날 약혼녀의 익사 소식을 듣게 된다. 그 슬픔을 잊으려 군 사관학교에 들어갔지만 허약한 체력을 감당 할 수 없어서 25세의 나이에 캐나다로 건너갔다. 온타리오주 팽겔리에대학을 다닐 때 해변에서 우연히 한 처녀와 사랑을 하게 되었으나 불행히도 그 처녀도 몸이 허약해 병에 걸려 죽고 말았다. 그후 그의 어머니도 중병에 걸려 위독하시고, 그는 그 아픔을 견딜 수 없어  유랑의 길을 떠났다. 그러나 어딜가나 슬픔과 비애만이 남아 있었다.


어느 날 그는 예배당 문 앞에서 다 떨어진 옷을 입은 거지가 피투성이가 되어 쓰러져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거지는 스크리븐에게 도움을 달라고 애원을 하였으나 그는 냉대하였다. 얼마 지난 후 그의 가슴속에 "내 너를 위해 피흘렸건만 너는 나를 위하여 무엇을 주었느냐" 고 하는 그리스도의 음성이 들려왔다. 그리고 "네가 한 사람에게 주려던 그 첫사랑을 많은 사람에게 나누어줌이 마땅하지 않느냐" 하는 주님 음성을 듣고 심적 변화를 일으키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그는 "죄짐 맡은 우리 구주 어찌 좋은 친군지 걱정 근심 무거운 짐 우리 주께 맡기세. 주께 사정 아뢰잖아 평화 얻지 못하네. 우리들이 어찌하여 아뢸 줄을 모를까?" 라는 찬송가를 지었고, 지금도 그의 찬송은 남아 있어 고난중에 있는 우리를 주님 앞으로 이끌어주고 있다. 그는 지금도 사랑의 성자로 불리워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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